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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 죽어간 기씨부인(奇氏夫人)
우리 고장 황룡면 맥동리에 무지개 같은 옛 전설을 담고 말없이 교훈을 주는 정려가 세워져 있으니 바로 행주기씨 열녀문이다.

기씨 부인은 이 나라의 대 학자요 문장가이며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던 하서 김인후 선생의 손부가 되는데, 이웃 광산군 임곡면 출신이신 대 학자 고봉 기대승 선생의 따님이었다.
기씨 부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5년 전 맥동 마을 하서 선생의 손자인 취옹공 남중에게로 시집을 왔다. 부인은 용모도 단정하였거니와 학덕이 높은 친정아버지의 교훈을 잘 받아 어른을 공경하는일, 일가 친척과 우애 하는일, 길쌈이며 바느질, 어느 한가지 못 하는 것 없이 얌전해서, 기씨부인의 칭송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퍼져갔다.

이 평화스런 가정에 임진왜란의 피눈물이 미처 가시기 전에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온 집안은 피난 봇짐을 싸다 말고 초상난 집처럼 슬픔에 겨워 서로 손목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남편 남중은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피난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쳐 놓고도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 기씨 부인은 남편에게 말하기를, "처는 없으면 다시 얻을 수 있지만 부모는 한번 잃으면 다시 얻을수 없는 것이니 어서 길을 떠나십시오."하면서 대문밖으로 떠밀다시피 하여 남편을 피난가게 하고 가족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정화수를 떠 놓고 밤낮으로 빌었다.

그러나, 텅텅 비다시피 된 쓸쓸한 마을에서 노비와 집을 지킨다는 일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어서, 부인도 할 수 없이 친정인 임곡으로 피난을 갔다가, 왜놈들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오던 중, 황룡강을 막 건넜을 때 난데 없이 왜병들이 나타나더니 기씨 부인 앞으로 와락 달려들어 부인의 팔을 덥석 잡아 끌었다.

깜짝 놀란 부인은 "이 더럽고 흉측한 놈들, 썩 물러서지 못할까"하고 호동을 치면서, 미리 간직했던 비수를 번쩍 빼들어, "이 더럽혀진 팔을 자르겠다."하고는 왜놈들에게 붙잡힌 팔을 자르니, 부인의 팔은 피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너무도 의젓하고 고결하며 강직한 태도에 겁을 먹은 왜병들은 하나 둘 슬슬 자취를 감추고 말았으나, 부인은 이윽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언덕 아래 시퍼렇게 흐르는 황룡강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듬해에 강원도로 피난갔다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 남중은 노비가 비단에 쌓아 고이 간직했던 팔 하나를 정성을 다하여 황룡면 맥동 원당 선산에 장사지내게 되었는데, 그 후 세상 사람들은 팔 하나만을 장사지냈다 하여, 한문으로 "일비장(一臂葬)"이라 말하게 되었고, 나라에서는 부인이 살았던 맥동마을에 정문을 세우니, 후세 사람들이 그 거룩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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