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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깨달은 효자 전일귀(全日貴)
전일귀는 지금으로부터 약200년전에 북이면 원덕리에 가난한 농가의 삼대 독자로 태어났다.

10년을 하루같이 공들여서 늙어서야 간신히 옥동자를 낳은 늙은 부부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귀를 들면 날을까 놓으면 꺼질까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 일귀가 돌이 지나 걸음마를 배울때도 그 부부는 너무도 귀여워서, 아빠는 엄마에게 가서 빰을 때려라 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가서 빰을 때려라 하여, 철모르는 일귀는 부모가 시키는데로 이쪽으로 가서 엄마의 빰을, 저쪽으로 가서 아빠의 빰을 때렸다.

그러나 그 부모들은 빰을 맞고도, 오히려 좋아서 한번 더 때리라고 빰을 내밀며 귀여워만 했다.
이렇게 귀여움만 받고 자라던 일귀는, 어느새 그것이 버릇이 되어 자라서도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어렸을 때와 같이 곧잘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빰을 때리곤하여 부모님의 걱정은 태산같았다.

그러자 동네에서는, "일귀같은 불효자하고는 놀지도 말아라."하며 불효자식이라고만 낙인을 찍어 버렸다.

모처럼 평생 공들여 얻은 아들이, 불효자가 되어 세상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자, 그 부모들은 간곡하게 타일러 보기도 하고, 이름난 학자의 집에 가서 교훈을 받게도 하였으나 아무런 보람없이 늙은 부모에 대한 불효는 날로 심해만 갔다.
그러는 사이에 일귀는 나이가 들어 결혼까지 하여 아기도 갖게 되었다.

하루는 일귀가 방에 벌떡 누워서 자기 아기를 배위에 올려 놓고 이 세상에 없는 보배처럼 사랑하고 있었는데 늙은 어머니가 비를 맞고 댓돌 위에 올라 서는 것을 보고도 본체 만체하고, 여기 누운채로 제 아들만 계속 얼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일귀의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일귀야, 넌 네 자식이 그렇게도 예쁘냐? 나도 너를 기를때는 그보다도 더 예뻐하며 키웠단다."하였더니, 무심코 이 말을 듣던 일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어머니, 정말이어요? 나도 그렇게 예뻐하며 키웠어요?" 하고 물었다.
"암, 예뻐하고 말고." 하며, 어머니는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이를 본 일귀는, 한참동안 무슨 생각을 잠기더니,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비오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무릎을 끓고 엎드려 절하면서 두손을 모으고,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천하에 몹쓸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 이제부터 온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모시겠습니다."하면서 흐느꼈다.

그런일이 있었던 뒤부터 지난일을 후회하며 가슴을 조이고 살았다. 하루는 마을안길을 지나다가 아들을 꾸짖는 이웃 아저씨가, "저 놈이 불효자 전일귀 같은 놈이야."하는 말을 듣고 난 일귀는 얼굴이 화끈 달아 올라 당장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부터, 일귀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토록 늦잠보, 게으름뱅이었던 일귀가 이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산에 올라 땔감을 해다 팔아서 어머니께 고기 반찬을 사다가 대접하였고, 어머니가 밭에 나기시는 것도 말렸다. 이렇게 늦게야 깨달은 일귀는 부모를 위해서는 괴로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고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는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일귀의 슬픔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정성으로 장사를 지내고 다음날부터 산소옆에 막을 짓고 거기서 자고 밥을 지어 산소에 제사지내며 살았는데, 산마다 아름드리 큰 나무가 빽빽하고 숲이 우거져 호랑이가 마을에까지 내려와 개는 말할것도 없고 사람까지도 물어가는 때이므로 밤에는 여간 무섭지가 않았다.
그러나 일귀는 그러한 무서움 같은 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너무도 지극한 효성에 호랑이도 감동했던지, 일귀가 산소에서 저녁밥을 지으러 물을 길르러 가면 꼭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지켜 주었다. 얼마 후에 한양에서는 궁궐을 보수하느라고 전국 각 지방에서 노력 동원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일귀도 한양에 올라가서 매일 궁궐 보수 작업을 남이 보거나 안 보거나 몇 달 동안 딸흘려 열심히 일했다. 이 소문이 조정까지 들어가게 되어, 조정에서는 어디 사는 어떤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가를 알아 보도록 하였다. 일귀는 주소 성명을 말하고 열심히 일한 이유를, "제가 몇 년전까지 불효를 해 오다가 늦게야 깨닫고 효도를 해 보려하니 부모님이 그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무리 원통해 하여도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라와 스승과 부모는 똑같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부모는 아니 계시니 나라에 제 정성을 다하려고 합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나라에서는 기특한 일이라 하여, 신분을 알아 보기 위해 원덕리까지 사람을 보내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한때 불효했으나 늦게 깨달은 후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 효성이 참으로 지극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큰 상을 내렸으며, 그 후부터 불효자 전일귀는 효자 전일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같이 전설처럼 세상에 드물게 보는 전일귀 효자를 기념하기 위해, 오랜 옛날에 그가 난 원덕리에 비석이 세워졌는데 동학혁명때 부러져서 최근에 사거리에 다시 세워져 후세 사람들의 산 교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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