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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동에서 은거한 변경윤
변경윤 선생은 1574년, 우리 고장 장성에서 망암 변이중과 오씨 사이에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변이중 선생은 조선 선조 때, 화차를 발명하여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 싸움에 이를 사용, 크게 승리를 거두도록 하신 유명한 분이시다.

선생의 이름은 경윤이며, 호는 자하, 본관은 황주로써, 천성이 아버지를 닮아 인품이 정중하며,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선생이 남달리 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사서 삼경을 한 번 읽고 이해하므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곤 하였다.
그런데 나이 20여 세에 가까워지자 술 마시고 시를 짓는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풍류로 나날을 보내게 되어, 어느 날 이를 눈치채신 아버지가 그를 불러다가 꾸짖었다. 선생은 아버지의 말씀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다시는 풍류생활을 하지 않고 학업에 열중할 것을 마음속 깊이 다짐하며, 그 후 우계 성흔, 사계 김장생 등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에게 글을 배우면서 더 한층 높은 학문을 닦았다.

광해 초년에 구언령(求言令)을 내리자, 선생은 교서관저작이란 분직으로서 당시 국정의 잘못된 점을 낱낱이 통박하면서, 특히 집권 대신 이이첨을 여지없이 공박하였고, 인목대비를 폐위하자는 의견이 일어나자 이의 부당함을 들어 강경히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려, 벼슬을 빼앗기고 목숨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에 선생은 지금의 북하면 신성리 자하동에 은거하여 평생을 성리학설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조정에서 선생에게 관직에 다시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끝까지 거절하였다.

선생은 자하동에서 은거하실 때 , 부친의 향헌(鄕憲)을 준수하며, 어른들과 예법을 토론하였다한다. 그 후, 나라에서는 정사원종공신 녹권(공신들 이름을 기록한 책)을 주고 예조 참의에 증직하고 봉암서원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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