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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산성을 지킨 윤 진(尹軫)
윤진 장군은 임진왜란을 당하자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가 순국하였으며 그의 부인 역시 열녀답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조를 나타냄으로써, 이 고장의 역사에 큰 별이 된 어른이다. 장군은 양구의 어느 오막살이 집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곧은 성품을 지닌 그의 부친이 불의를 미워하다가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장성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이때 전라 감사 이정암이 입암산성을 수축하는 일을 장군이 맡도록 하였다. 입암산성은 고려 때 몽고군을 막아낸 일이 있는 유서 깊은 산성으로 헐리어져 있는 것을 다시 쌓아서 긴요하게 쓰려고 한 것이다. 그는 이를 사양하지 않고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면서 성을 완성하여 대포를 쏘는 곳과 창고를 만들고, 군량을 모아 두어 호남지방을 지킬 결심을 굳게 하였다.

왜적의 무리가 우리 호남 지방에까지 밀려와 남원 등이 함락되자 벼슬 아치들은 두려워서 모두 도피하고 말았다. 이때 장군의 친구들이 충고하기를, "자네는 성 쌓으라는 명은 받았지만 지키라는 명을 받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가? 몸을 피함이 마땅하다."라고 말하였으나 그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조정에서 이 성을 쌓은 것이 오늘의 난리에 대비코자 한 것이니, 어찌 신하된 도리로 내 살 길만 바라리오. 이 성은 바로 내가 죽을 땅이요, 오늘은 내가 목숨을 바칠 날이다."하면서 의병 수백 명을 모아 왜적의 무리와 싸웠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 끝에 성이 무너지고 창칼에 목이 찔려도 장군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싸우다가 마침내 태연한 모습으로 순절하였다.

선생의 부인 권씨도 남편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품에 간직하였던 은장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장군의 뒤를 따르니, 이를 본 왜적의 무리들까지도 크게 느낀 바 있었던지 그 시신을 고이 모셨다 한다.
그 후 나라에서는 장군의 충성심과 공을 높이 생각하여 좌승지 벼슬을 내렸고, 부인에게는 정려가 명해졌다. 그리고 산성을 다시 수리하면서 장군의 정신을 추모하여 입암산성에 순의비를 세우고, 이 고장 선비들이 장군을 받들어 봉암서원에 배향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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