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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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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농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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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에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일제는 막을 내리고 우리 나라는 36년간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해외에 있던 동포들이 귀환하므로 인구가 급증하여 1945년11월 말경에는 도매물가가 30배 이상 폭등하였다. 국민주식인 쌀 부족은 급기야 쌀값파동으로 큰 사회문제를 가져왔다. 이무렵의 농업생산 상황을 보면 1945년의 주곡인 미곡생산량은 1,848.4천톤, 단보당 평균수량은 175kg으로 '90년대 후반 생산량의 약 1/3밖에는 생산을 못하였다. 그러나 답리작(畓裏作) 맥류재배와 밭에서 생산되는 잡곡, 두류, 서류 등이 대용되므로 어려운 가운데 식량을 해결하였지만 또 한 차례의 보리고개의 쓰라림을 겪어야만 했다. 이어서 5년후 6·25사변이 발발하여 식량과 생필품의 부족으로 우리국민은 일제말에 못지않은 생활고를 또 한번 겪어야 했다.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내세워 70%에 달하는 소작인과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에게 토지를 유상분배하는 농지개혁법을 1949년 6월 21일에 공포하였으나, 6·25사변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1951년 4월 28일 농림부령 18호로 동법시행규정으로 남한 전역에 걸쳐 시행하였다.
6·25사변은 1953년에 정전협정으로 휴전하였고, 농민은 식량증산에 총력을 기울렸으나 점점 농업의 경제성장률은 뒤쳐져 갔다. 1954∼1961년간의 농림어업부문의 경제성장률은 2.9%에서 1962∼1971년간 3.7%, 1972∼1981년간은 2.6%, 1982∼1991년간은 1.9%, 1992∼1997년간은 2.5%에 끝인데 비해 광공업부문은 동 기간중 각각 8.9%, 17%, 14.3%, 11.6%, 6.6%의 고도성장률을 실현하였다. 국내총생산(경상GDP기준)에서 농림어업부문의 비중은 39.1%에서 1980년에는 14.7%로 1997년에는 5.7%로 급강하하였다.

이렇게 농업부문의 상대적 지위 약화에도 불구하고 농정은 보다 강화되어 농촌진흥청 산하 농사시험장 연구관들의 눈부신 연구결과에 의해 육성된 벼품종과 이의 보급을 위한 농촌지도 및 행정공무원의 열성적 활동은 우리 농업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 1970년대의 기적의 볍씨로 불리워진 다수성 통일벼 품종의 출현, 보온자재인 포리에티렌 필름(비닐), 농약, 화학비료, 동력경운기 등이 생산공급 되므로 녹색혁명(綠色革命)을 성공시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최고수준에 이르렀다. 1977년에는 무려 4,170만석(6,004,800M/T)을 생산하여 7만M/T을 인도네시아에 대여수출하는 여유까지 보이는 한편 정부는 쌀 막걸리 주조를 허락하기도 했다. 쌀에 있어서는 1975년에 3,240만석을 생산하여 자급달성을 이룩하였다.
농공간의 불균형 성장에 따른 소득격차 확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관련 무역자유화에 따른 농산물 수입개방 압력 등 농업을 에워싼 내외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우리의 농업은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좌표를 정립하여 세계화와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하여야 할 급박한 싯점에 이르렀다.

장성은 고래로 산수가 수려하고 풍부한 임산자원을 갖고 농업이 그 주종산업으로의 역할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견지하고 있다. 국토면적 51,864㎢중 약 63%가 임야이며, 경지면적은 24%, 비경지면적은 13%로 대략 구성되어 있는데, 경지면적 중에서도 논면적비율이 높아 벼농사가 주종을 이루면서 부업격으로 장려되고 있었던 잠업은 나이롱섬유의 출현과 농가노동력의 부족으로 '80년대말에서 '90년대초에 걸쳐 사양화하고, 반면, 시설원예(채소류, 화훼등)를 비롯한 시설버섯재배, 과수원예, 한우사육과 젖소사육이 70년대부터 급진적으로 확대 보급되었다.

벼농사에 있어서 절대량이 부족한 관개수(灌漑水)를 확보하기 위하여 장성댐이 1976년에 완공되어 장성 수도작의 수리안전답률을 크게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함평, 나주, 광산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한편 광주의 상수도원으로도 일부가 할애되고 있음은 댐의 설치 목적을 십이분 발휘하고 있다.
1980년대의 농업은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2-1986)에 따라 농업분야의 경제성장률이 4%대로 성장하고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7-1991)이 추진되었지만 농업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치닫고 말았다. 그런데 이무렵 즉 1986년 9월에 개최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농산물에 대한 수입개방이 요구되었고, 1994년 4월에는 오랜동안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최종타결을 봄으로써 WTO(세계무역기구)가 1995년 1월에 발족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농업도 국제무역자유화 질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제일의 최우수 농산물을 교역하지 않으면 안될 어려운 싯점에 이른 것이다. 장성의 농민들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농산물 수입개방이 되면은 농업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공포에서 협상반대를 하였으나, 쌀 수입이 1993년부터 이루어지고 2001년부터는 생우(生牛)와 쇠고기 수입개방이 되고 말았다.

장성군은 1995년 후반부터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가까운 대도시 광주와 호남고속도로의 유리성을 고려하여 상업농에 걸맞는 고품질 농산물의 생산을 위하여 적정 작목선택과 수출농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자 농민교육(작목별 농민순회교육, 해외선진농업연수, 국내 선진농장 견학등)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였다. 그 결과 배, 단감은 동남아와 하와이로,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고추, 딸기가공품은 일본으로 소량이나마 1998년에 처녀 수출되었다, 그후 배와 단감 재배면적이 확대되었다. 전천후 농업과 농산물의 공장화를 위하여 양액재배(養液栽培) 유리하우스도 확대 보급하였다. 농업기반 구축사업으로 농로와 관배수로 정비에 지방자치체는 주력하고 있을 뿐아니라 경지정리, 흙수로 개선, 농로포장 등 많은 진척을 보아 수도작 영농의 생산비를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생산기반 구축사업에는 매년 상사업비(賞事業費)의 일부가 투입되었는데 1996∼2000년까지의 포상금은 71개분야 67억 3천만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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