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의 자연 친화 도시 옐로우시티 장성

꿈과 희망이 있는 옐로우시티 장성

제1장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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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메뉴 정의
  • 1. 식량작물 생산
  • 2. 채소원예작물 생산
  • 3. 특용 및 약용작물 생산
  • 4. 과실류 생산
  • 5. 화훼류 생산
  • 6. 잠업과 잠견생산
  • 7. 수출농특산품

1. 식량작물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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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 주요작물 재배상황을 1931년에 발행된 전라남도사정지(全羅南道事情誌)에서 보면 미곡 재배면적이 많았고 답이모작(畓二毛作)이 늘어 종래의 맥류밭 재배가 점차 논 이모작재배로 전환 경향을 보였다. 그밖에 잡곡류, 과채류, 특용작물 등 현저히 개선발전 되었다고 기록하고 작물종류로 벼, 맥류, 콩, 팥, 조, 기장, 매밀,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을 들었다.

그 후 농업은 일제하에서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어렵게 연명하며 힘들게 농사를 지어 고율의 소작료를 내고 보릿고개를 맞기 일수였다. 1924년경 소작농가들은 지주에게 자기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소작인회(小作人會)를 조직하였는 바 전라남도지 권10에 보면 장성소작지회가 동년 1월에 조직되고 이어 남면소작인회가 5월에 조직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 때는 공출(供出)이라는 미명하에 각종 농산물을 강제로 출하시킴으로써 절량농가가 속출하였다.

광복후에도 6·25동란으로 인해 식량사정이 몹시 어려웠고 1967∼1974년사이에는 주식인 쌀이 부족하여 112,608∼906,912M/T의 외국미를 해마다 수입하였으며 때로는 상당량의 보리도 수입한 해가 있었다. 그러나 1965년부터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 연구진에 의해 처음으로 IR667(후일 통일벼로)이라는 이름의 벼, 신품종이 연구·개발되어 필립핀 국제미작(米作)연구소(IRRI)의 포장에서 세대촉진(世代促進) 증식재배로 생산된 볍씨가 1971년부터 농가포장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급진적으로 확대 보급되었다. 통일벼는 쌀 자급의 신화를 이루었으나, 한편 맥류(麥類) 재배면적은 역으로 매년 감소현상을 나타냈다. 특히나 밀(小麥)은 1990년대에 이르러 그 자취를 감추고 정미소에 제분기가 없어져 버렸다. 이런 마당에 우리 밀 되살리기 운동이 젊은 농부들 사이에서 부르짖고 있으나 값이 싼 외국 밀가루에 밀려 그 운동도 몇 해를 못 가 식어버렸다. 기장(黍)은 오래 전에 사라지고 조 재배도 장성에서 살아졌다.

두류(豆類)는 식물성 담백질원으로 전중어(田中魚)라 할만큼 1960년대 이전의 우리 국민식량으로 매우 중요한 작물인데 매년 그 재배면적은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도 농산물 수입개방에 의해 싼값으로 수입되는 외국콩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요즈음은 그 콩 가운데는 유전자조작(遺傳子操作)에 의해 만들어진 콩이 수입되어 인체에 악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시비에 말려있다.

(1) 쌀 생산량 변화

쌀의 생산량을 '90년쯤 거슬러 올라가 1910년도의 우리 나라 쌀 단보(段步=反步)당 수량을 보면 멥쌀 0.775석(111.6kg), 찹쌀 0.695석(100kg), 밭벼쌀 0.710석(102.2kg)으로 평균 0.769석(110.7kg)이었다. (광복이전의 경제·사회상. 통계청. 1995) 한편 장성군의 쌀 생산량을 전라남도사정지(1931)에서 보면 [표 4-5]와 같다.
[표 4-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요즈음의 생산실적에 비하면 평균 단보당 수량이 아주 낮은 수량임을 알 수 있으나, 이 무렵의 전국 평균 수량과 대조해 보면 장성의 쌀 생산실적은 전국 평균수량을 웃돌고 있었다.
1960년∼2000년까지 40년간의 장성쌀 생산실적은 조사되었지만 광복후 15년간의 통계자료가 없어 좀더 자세한 분석을 할 수 없음이 아쉽다.

1960년부터 1964년에 이르기까지 5년간의 단보당 수량은 230kg∼266kg로서 평균은 247kg였다. 연차적으로 수량이 증가하다가 1971년에 이르러 신품종인 통일벼가 재배되면서 300kg대를 시현하다가 통일벼의 재배면적이 논면적의 64%인 5,685ha로 급진적 확대재배는 단보당 수량마저 405kg로 껑충 뛰었다. 총생산량도 1960년의 100,000석대에서 300,000석대로 3배 급상승하였다. 이러한 증수효과를 거양하게 된 대는 여러 가지 증수요인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즉 증수요인으로 조기육묘를 가능케 한 보온자재(비닐), 농약, 화학비료, 물관리, 농민의 벼농사 기술 습득과 실천의욕 등이 주효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벼가 500kg대를 생산하였는데 일반형 벼 품종도 그 수량이 [표 4-6]에서 보듯 400kg대의 수량을 보인 것도 위의 증수요인이 일반벼 재배에도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역사상 쌀을 자급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 1975년이었고, 1977년에는 4,000만석을 돌파하였다. 이 해 장성에서는 신품종인 통일벼를 논면적의 94%를 확대재배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통일벼의 확대재배는 98%에 이르나 전년도에 비하여 단보당 수량이 54kg나 떨어진 것은 그 해 극심한 가뭄으로 수리 불안전 답의 모내기가 한달 남짓 늦었기 때문이다. 그해 한편으로는 통일계 품종인 노풍벼가 목도열병 이병피해로 큰 감수를 가져왔다. 이 때 농민들은 국가가 권장한 품종을 재배하여 다른 품종과 달리 큰 피해를 보았다며 거센 항의가 있어 정부는 급기야 피해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정도에 따라 보상을 하였다. 따라서 1979년 이후 점차적으로 통일벼 품종의 재배면적은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농촌사람이나 도시사람을 막론하고 식량이 자급되므로 이제는 쌀 맛을 따지게 되었다. 통일벼는 남방형(南方型) 벼의 혈통과 온대형(溫帶型) 벼와 교배육종 하였기 때문에 쌀 맛에 있어서 찰기( 性)가 적어 한국인의 입맛에 만족을 주지 못하였고, 시장에서도 통일품종 쌀값이 차이가 났고 거래가 점차적으로 떨어졌다.

[표 4-5] 벼 품종별 쌀 생산량(1928년도 실적)

벼 품종별 쌀 생산량 - 품종별, 조신력, 다마금, 곡량도, 중숙신력, 변경, 계를 나타낸 표
품종별조신력다마금곡량도중숙신력변경
재배면적(정)14.51,423.502,908.302,201.002,173.4088,720.70
수확량(석)11714,04828,30823,00822,07387,554
단당수량(홉)8079879731,0451,0161,003

자료 : 전라남도사정지(1931)
주 : 이 품종들은 일본 도입품종들임. 1석은 144kg. 1,000홉은 1석.

[표 4-6] 장성군 쌀 생산실적 (1960∼2000) (단위: ha, M/T, 석, kg, %)

장성군 쌀 생산실적 - 년도, 총면적, 총생산량(M/T수, 석수), 품종별면적(통일형, 일반형), 10a당 수량(평균, 통일형, 일반형), 주재배 품종 및 보급비율을 나타낸 표
년도총면적총생산량품종별면적10a당 수량주재배 품종 및 보급비율
M/T수석수통일형일반형평균통일형일반형
19608,74520,114139,668-8,745--230천본욱, 농림6. 8호. 팔탈 팔굉
19618,75222,143153,761-8,752--253천본욱, 농림6. 팔굉
19628,75220,742144,032-8,752--237천본욱, 농림6. 팔굉, 진흥
19638,41621,124146,686-8,416--251천본욱, 농림6. 팔굉, 재건
19649,44315,118174,422-9,443--266천본욱, 농림6. 팔굉, 진흥
19659,59930,429211,298-9,599--317농6호, 천본욱, 팔굉, 금남풍
19669,62732,732227,290-9,627--340농6호, 천본욱, 팔굉, 금남풍
19679,86027,312189,656-9,860--277농6호, 천본욱, 팔굉, 금남풍
19687,58817,756123,297-7,588--234농6호, 팔딜, 팔굉, 금남풍
19699,34312,140223,180-9,343--344농6호, 팔달, 팔굉, 금남풍
19709,03626,894186,754- 9,306--289농6호, 팔달, 팔굉, 금남풍
19719,03130,919214,70215 9,286332523338농6, 팔금, 팔달, 천본욱, 통일벼
19728,98231,072215,764287 (0.3) 8,695346542334농6, 팔금, 팔달, 금남풍, 통일벼
19738,83334,475239,3942031(23)6,802390394390통일, 팔굉, 금남풍, 농6,
19748,87231,586219,3333,158(36)5,714356402289통일, 금남풍, 유신(통일품종)
19759,00531,534218,9723,773(42)5,232350480258유신, 조생통일, 금남풍, 농백
19768,86042,794297,1625,685(64)3,175483526405유신 28%, 통일 22%
19778,96948,702338,1878,415(94)1,554543551417유신 36%, 밀양23호 26%
19789,25345,247314,1969,081(98)172489490421유신 28%, 노풍 15%
19799,33245,447315,5837,777(83)1,554487495448밀양23호 32%, 유신 18%
19809,31239,576274,8167,262(78)2,050425449339밀양30호 35%, 밀양23호 25%
19819,45337,907263,2235,702(60)3,751401414382밀양30호 20%, 서광 15%
19829,35741,358287,1907,629(81)1,728442469419밀양30호 22%, 풍산 15%
19839,33640,705282,6556,535(70)2,801436452354풍산 17%, 태백, 영풍 13%
19849,53343,184299,8736,286(66)3,247453476420삼강 30%, 밀양30호 10%
19859,62544,564309,4525,515(57)4,110463498416삼강 27%, 동진 17%
19869,64444,459308,7224,693(49)4,951461490434삼강 30%, 동진 31%
19878,91937,103257,6444,488(46)4,491416444387삼강 28%, 동진 27%
19889,07945,667317,1143,899(43)5,180503558461삼강 30%, 동진 24%, 섬진 22%
19899,02037,613261,1873,002(36)6,018417434404삼강 20%, 동진 20%, 섬진 22%
19909,02041,131285,6152,750(30)6,270456503434삼강 14%, 동진 20%, 섬진 17%
19918,94238,987270,726783 (9)8,159436500431삼강 6%, 동진 31%, 섬진 21%
19928,65738,610268,109-8,657--446동진 46%, 탐진 15%
19938,47935,273244,933-8,479--416동진 51%, 탐진 16%, 회성 7%
19948,23936,416252,891-8,239--442동진 48%, 간척 13%, 계화 5%
19958,02234,013236,201-8,022--424동진 40%, 간척 11%, 금남 7%
19967,63537,410259,790-7,635--490동진 35%, 간척 10%, 계화 6%
19977,26638,655268,438-7,266--532동진 31%, 화영 15%, 간척 14%
19987,38335,955249,688-7,176--487동진 18%, 화영 13%, 일미 12%
19997,65438,040264,167-7,391--497대산 26%, 동안 21%, 화영 8%
20007,61438,527267,548-7,649--506동안 20%, 대산 19%, 일미 18%

자료: (1) 1960∼1970까지의 생산실적은 장성군 당해연도 통계연보에 따름.
(2) 1971∼1975까지의 생산실적은 장성군 영농 백서에 따름.
(3) 1976∼1985까지의 생산실적은 장성군 농촌지도 사업보고서에 따름.
(4) 1986∼2000까지의 생산실적은 장성통계사무소 통계인용
(5) ( )수자는 통일벼 재배면적 비율임.

이 무렵 농촌진흥청이 통일계 품종의 문제점으로 제시한 것을 보면 쌀 맛 즉 찰기의 부족, 가을 추위에 약한 성질(耐冷性부족), 도열병과 기타 충해에 약한 성질(耐病蟲性부족), 수확할 때나 황숙기말 입모 상태에서 벼 알이 강풍에 떨어지는 성질(脫粒性 약함) 등이라고 밝혔고, 농민도 재배의욕을 조금씩 잃어갔다. 1980년에는 가을추위가 빨리와서 통일벼에 냉해가 엄습하여 단당수량이 449kg로 떨어졌고 일반벼도 339kg로 많은 감수를 초래했다. 그 결과가 다음해인 1981년에는 보급면적도 61%로 급감하였다가 1982년에는 81%로 늘고 풍년이 들었으나 1983년부터는 재배면적이 10%씩 감소되다가 1986∼1988년사이에는 재배면적은 40%대로 급감하고 1989년에는 36%로, 1990년에는 30%로 그리고 1991년에는 논면적의 겨우 9%만이 재배되고 장성에서는 기적의 볍씨라고 일컬어 온 통일형 벼는 장성에서 만 21년치(年齒)를 다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쌀품질의 고급화와 상품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쌀 브랜드화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로 디딜방아(120톤), 참으로 깨끗한 쌀(32톤), 한마음 유기농쌀(82톤), 자운영 쌀(268톤), 꿈의 쌀(470톤) 등의 브랜드 쌀 생산으로 농민 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2) 맥류 생산량 변화

장성의 맥류 생산량을 1931년에 발행된 전라남도사정지에서 살펴보면 1928년도의 재배면적은 7,215.9정보에 생산량은 96,673석으로 밭재배와 답이작으로 논 보리재배가 상당면적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농가에서 보리생산은 논에서 쌀 생산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곡물이었다. 예로부터 노농들은 보리가 농가에서 남아나면 그 만큼 쌀이 남는다고 하였다. 그 말은 곧 보리는 쌀과 같이 식량이 되어 줌을 의미한다. 그래서 논보리를 재배하는데 전력을 쏟았고 소작료를 걷어가지 않았기에 더욱 힘썼다. 일제하의 어려웠던 식량사정을 해결하는 데에도 맥류생산은 큰 몫을 하였다.
광복전후하여 장성에서의 맥류재배는 열을 올렸다. 일제말엽의 소위 대동아전쟁때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일구어 보리를 재배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 나라의 맥류생산량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10년에 85만 7천여 정보를 재배하여 620만석을 생산하였고 단보당 수량은 0.72석이었다. 그 후 1930년대에 이르면 재배면적은 130만 정보를 넘고 광복직전인 1943년에는 재배면적이 147만 정보로 확대재배 되었다. 그런데 그 자료에서 단보당 수량은 면적이 증가되면서 증수경향을 보였으나 전쟁기간 중이었던 1942년과 1943년에는 단수가 감소되고 있다. 이는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무리하게 배수 불량 답에까지 2모작 맥류재배를 강행하고 비료 부족에서 온 결과라고 풀이된다. 1943년의 전남도 단보당 수량은 13개도 가운데 밭재배 위주의 강원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수량이 높았다.

장성군의 맥류재배상황을 살피는데 광복후 20년간의 자료를 얻을 수 없어 생산추이를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1965년 이후의 자료에서 맥류 재배상황을 살펴본바 [표 4­7]에서 보듯 1965년에는 9천 1백여ha를 재배하여 단수 123kg를 생산하였고 1970년에는 1만 3백여ha로 면적이 증가하고 단수도 256kg 로 배증을 보게된다. 이어 1975년에도 1만 1백여ha이며 단수는 6년전에 비해 50kg를 더 증수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70년대에 들어 화학비료의 자국생산량이 늘어나 적정시비와 농민의 새로운 증수기술의 습득 실천이 주효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1976년 이후 급격히 재배면적이 줄고 있는데 이는 이 무렵 통일벼 다수확 성과가 보리재배를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고도 보아진다. 한편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인구의 이농현상은 보리재배 면적을 감소시키는데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1985년에는 재배면적이 2천8백여ha로 급감하였고, 1990년에는 1천 8백ha로 1995년에는 5백여ha로 대폭 감소현상을 보였는데, 이런 결과는 앞에 밝힌 농촌노동력의 감소와 농자재 값의 상승, 그리고 보리가 농가 식량으로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다.

장성에서 보리 재배면적이 급감하였으나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1996년 이후 서서히 확대되어 가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보리재배가 농가소득원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농민을 계도한 결과라고 보아지며 1999년에는 1,001ha로 증가되었고 단수도 287kg로 증수되고 있다.
장성에서 맥류(쌀보리, 겉보리, 밀, 호밀)중 밀 재배는 1989년에 3ha 재배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는데, 수량의 감소로 소득이 낮아 기피하게 되고 값이 싼 외국산 밀가루 수입에 밀려버렸다고 보아진다. 겉보리는 쌀보리가 나오기 전에는 주 재배 품종이었으나 쌀보리 출현 후는 엿기름용으로나 일제하에서는 군마(軍馬)의 사료로 재배시켰다. 장성에서 겉보리 재배모습을 보기 드물게된 것은 1972년 이후라고 보아진다.

(3) 두류 생산량 변화

두류(콩, 팥, 녹두, 돈부) 재배면적을 전라남도사정지(1931)에서 1928년의 실적을 보면 콩(大豆) 1,663.4정보에 6,934석을 생산하였고, 팥(小豆)은 276.3정보에 972석을 생산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65년의 재배면적도 1928년의 면적과 비슷하였으나 1975년이후 매년 감소하여 1999년에는 925ha로 1965년의 50%에 머물렀다. 이와 같은 감소현상은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저렴한 외국산 콩이 수입된데 기인한다. 광복전후만 하더라도 큰 마을마다 맷돌을 돌려 두부를 만들었던 소규모 공장이 있었으나 자취를 감추었다.

(4) 서류 생산량 변화

장성의 서류(고구마와 감자) 생산실적을 1928년의 기록에서 보면 고구마 120,894관(453.3M/T), 감자 37,750관(1,415.6M/T) 도합 1,868.9M/T을 생서로 생산하였다. 1965년도의 생산실적은 생서로 1,300여ha에서 14,000여M/T을 생산하였으나, 매년 재배면적이 감소하여 1975년에 이르면 800ha대로 감소하고 점차 줄어 [표 4-7]에서 보듯 1999년에 이르면 60ha로 격감한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 식량이 그 만큼 여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제하는 물론 광복후에도 식량이 부족하여 고구마와 감자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써 쌀이나 보리밥을 지을 때 서류를 넣어 밥을 지어 먹기도 하고 대용식으로 삶아서 많이 먹었던 때는 1960년대 이전이다. 1960년대에는 고구마를 절간(切干)하여 주정원료로 매상하므로써 농가소득 향상에도 기여했다.

(5) 잡곡 생산량 변화
장성에서 잡곡(조, 수수, 옥수수, 기장, 피, 메밀) 재배가 1928년에는 조 95.8정보에 608석, 수수 70.8정보에 433석, 옥수수 23.4정보에 135석, 메밀 77.4정보에 479석을 생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65년경에는 잡곡류가 소면적이나마 재배되었으나 조 수수면적이 대폭 감소하고 1999년의 재배실적은 조 10ha, 수수 1ha, 옥수수 14ha, 메밀 12ha로 집계되고 있으나, 그것들은 산발적으로 밭두둑가나 공지의 극소면적에 재배되고 있는 것을 모은 것에 불과 하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잡곡류는 재래종이 많아 유전자원 식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인데 자취을 감추고 있음은 아쉬움이 남는다.

[표 4-7] 식량작물 생산량 (단위: 면적: 1000 ha, 단수: kg, 생산량: 1000M/T)

식량작물 생산량 -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1999, 2000을 나타낸 표
196519701975198019851990199519992000
합계면적22.323.521.8-1511.4109.27.6
단수---------
생산량55.8-68-554738.7--
미곡면적9.6999.39.6987.67.6
단수317289350425463456424497506
생산량30.426.831.539.544.541.1343838.5
맥류면적9.110.310.1-2.81.80.51-
단수123252256--239262296287
생산량11.226.430.6-8.84.61.62.1-
두류면적1.92.21.5-0.80.61.40.9-
단수4975112-108167163--
생산량0.91.72-0.11.12.3--
서류면적1.31.10.8-0.20.040.030.06-
단수-1,085-462-566534-2,212--
생산량14-3.7-1.60.20.7--
잡곡면적0.40.60.2---0.10.03-
단수736990---150--
생산량0.310.450.16---0.2--

자료: 장성통계연보. 1965, 1970, 1975, 1986, 1991, 1996, 2000

2. 채소원예작물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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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사정지(1931)에 따르면 1928년 무 생산량은 407,784관(1,529M/T), 배추는 182,327관(683M/T)을 생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무렵의 채소류 생산방법은 자연에 의존하여 재배하였다. 일제하 장성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거주하며 채소원예작물(무, 호배추, 당근, 우엉, 마, 양파, 대파)을 전문적으로 재배하여 시장 출하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채소원예작물 생산은 기상조건 즉 겨울이 길어 채소 원예작물의 생육조건에 불리하여 생산량이 적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은 저장 식품으로 단경기인 겨울을 나기위해 김치를 개발하였고 무 구덩이에 무를 갈무리하여 겨울의 찬거리를 마련하였다. 일제하의 식량이 부족하였을 때는 물론 광복후의 어려웠던 때는 무 밥을 지어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랬던 구황작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보온자재인 비닐을 생산해 냄으로써 보온자재로 활용하여 시설원예의 급진적인 발달을 보게되었다. 비닐하우스와 터널을 만들어 촉성, 반촉성 재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닐 하우스 안에 온풍기를 설치하여 연중 무휴로 원예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과채류인 수박, 토마토, 오이, 딸기 등을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낳은 것이 60년대 후반이다. 그리고 원예작물의 전천후 공장생산체계를 갖추기 위해 유리 온실이 장성에서도 '90년대에 남면의 천승욱은 설치 운영하고 있다.

1965년 이후의 장성의 원예작물 재배면적을 [표 4-8]에서 보면 무, 배추에 있어서 매년 감소하여 생산량도 줄어들었으나 상추와 시금치는 '90년대 후반에 증가하였다. 과채류인 수박, 토마토, 딸기 재배면적이 증가하여 생산량도 1999년에 수박은 약 5,000M/T을, 토마토 3,600여M/T을 그리고 딸기는 1,000M/T여를 생산하였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국민소득의 향상과 소비층의 취향이 고급화된데 기인한다. 농업소득의 증대를 위해 보급된 비닐하우스 재배 기술이 정착됨과 동시에 과채류 값이 다른 원예작물 값보다 시장가가 높게 형성되고 있기에 면적이 확대되는 것으로 보아진다. 토마토는 일제하에서 우리국민은 그 향이 구미에 맞지 않아 먹지를 않았고 관상용으로 화단에 심었었다. 가지는 나물 반찬으로 많이 먹었던 것인데 국민의 취향이 바뀌어 점차 재배면적이 줄고 있다.

양파는 광복후 장성읍 오동촌의 김재웅을 중심으로 채종재배가 이루어져 도내에 공급하였다. 양파의 재배면적이 1975년경을 정점으로 점감하여 1999년에는 4ha에 이른 것은 자가용으로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마늘은 우리 국민의 오랜 전통적인 조미채소로 농가에서는 텃밭에 재배하고 있기에 면적의 변동이 완만하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외국산으로 중국산마늘이 시장을 파고들고 있어 국산이 위협을 받고있다. 오이, 참외, 수박, 토마토, 딸기 등 과채류는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소비량도 급진적으로 증가될 것이 예상된다.

장성의 시설원예는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에 이르러 그 규모가 확대되었는데 1995년 지방자치시대 이후 지자체는 집중투자하여 비닐하우스 면적을 [표 4-9]에서 보듯 더욱 확대하였고, '95∼2000년의 투자상황은 [표 4-10]과 같다.

한편 장성의 농산물 수출은 1998년에 [표 4-11]에서 보듯 비로소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이 외국에 수출되었다. 이전에는 삼동농산이 1980년대 들어 딸기가공품을 위시하여 수종의 농산물가공품만을 일본에 겨냥하여 수출하였을 뿐이다.
남면의 천승욱과 강용은 채소분야에서 1999년 농림부 신지식인으로, 남상도 목사는 환경농업으로 2000년에 전남도 신지식인으로, 그리고 황룡면 김문수는 MS균에 의한 유기농산으로 1999년에 장성군 신지식인에 각각 선정되었다.

[표 4-­8] 주요 채소원예작물 생산량 (단위: ha, 1,000M/T)

주요 채소원예작물 생산량 -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1999을 나타낸 표
19651970197519801985199019951999
무우면 적7279991,1966616294113104
생산량9.68.912.62.67.14.85.25
배추면 적20518522494148187120158
생산량2.52.52.86.611.312.26.910.3
상추면 적--10.86731191976
생산량--97.21185573483222,201
시금치면 적6.510.681515242120
생산량62.174.361215182350150315
오 이면 적10.5121912158.716
생산량18016424824435424031612
호 박면 적37.133.756.1189182423
생산량354.7337698316155318447560
참 외면 적2115.520.228.8312917
생산량30917217042257341175402
수 박면 적30.650.975.267.48547131182
생산량5255647571,4572,0669972,0364,951
토마토면 적7.59.99.22.32.27.91657
생산량23718514957601812953,633
딸 기면 적--1.3138--5857
생산량--10.41,486--7431,015
가 지면 적96.310.713.3
생산량292.6155178
양 파면 적17.36.334.718311444
생산량248.578495545959516262200
면 적37.21619.532
생산량183.5172192931
마 늘면 적76.260448381886665
생산량618.5209190651527756702715
고 추면 적1,423178.9209.2251
생산량369.8324.7327.2321

자료: 장성군사 (1982), 장성 통계연보 1981, 1986, 1991, 1996 2000.

[표 4-9] 시설원예현황 (2000년말) (단위 : ha)

시설원예현황 - 계, 유리온실, 비닐하우스(소계, 자동, 비가림), 약액시설, 농가수를 나타낸 표
유리온실비닐하우스약액시설농가수
소계자동(연동)비가림(단동)
216.32214.357.7156.612.3688

자료 : 농림과

[표 4-10] 연도별 시설 원예 투자현황(1995∼2000)

연도별 시설 원예 투자현황 - 사업대상자, 시설별 면적(계, 유리온실, 파이프온실, 양액시설, 시설개선, 에너지절감시설, 비가림시설), 사업비를 나타낸 표
사업대상자시설별 면적(평)사업비
(천원)
유리 온실파이프 온실양액 시설시설 개선에너지절감시설비가림시설
397232,0096,00060,21620,0565,87450,49589,36812,759,450
19952622,3933,00019,393- - - - 3,355,000
19962221,8003,00018,800- - - - 3,355,000
19975336,049- 12,621- 5,180- 18,2481,742,000
199813062,019- 6,6294,20169450,495- 1,296,000
199911569,648- 2,77315,855- - 51,0202,508,950
20005120,100- ---20,100502,500

자료 : 농림과

[표 4-11] 농산물 수출상황 (단위 : M/T, 1,000$)

농산물 수출상황 - 1998(수출량, 수출액, 수출국), 1999(수출량, 수출액, 수출국), 2000(수출량, 수출액, 수출국)을 나타낸 표
199819992000
수출량수출액수출국수출량수츨액수출국수출량수출액수출국
방울 토마토-27일본112203일본495770일본
파프리카- - - - - - 132492일본
- 100미국35148캐나다8469캐나다
단감- - - 7597동남아159181동남아
딸기 가공외- 6,659일본1,3493,316일본1,0083,323일본
-6,786-1,5713,764-1,8784,835-

자료 : 농림과

3. 특용 및 약용작물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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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특용작물 중에서 섬유작물인 목화, 대마, 모시가 장성에서 재배된 것을 장성읍지(1929)에서 살필수 있고 또한 전라남도사정지(1931)에서는 주요작물 가운데 면화 재배면적 1,301.4정에서 1,166,955근(700M/T), 대마, 10,817관(40.5M/T), 모시 2,837관(10.6M/T)을 생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용작물중 섬유작물인 면화 재배면적은 [표 4-12]에서 보듯 매년 감소하다가 1989년 이후 화학섬유에 밀려 사라졌다. 그러나 전라남도사정지(1931)에 따르면 면화는 밭 작물중 비중이 높은 작물로 1,300여정을 재배하였다.

면화는 무명베의 원료로 농가에서는 이를 가공하여 베를 짜서 옷감과 이불솜으로 주로 썼고 남은 베는 시장에서 팔아 농가경제에 보탬을 주던 큰 소득원이었다. 우리고장에서 삼(대마)과 모시(저마)도 광복후 1970년 초까지 재배하였으나 이것 또한 목화처럼 화학섬유 영향과 중국 수입품 때문에 사라졌다. 유지작물인 참깨와 들깨는 70년대말까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증가하였다가 들깨는 '80년대 이후 급감하였다. 참깨는 1980년까지는 312ha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1990년에 20ha까지격감하였는데 조금씩 늘어 1999년에는 188ha로 늘고 76M/T의 생산실적을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농산물은 수입개방 되어 값이 싼 참깨가 들어와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하였지만 국산참깨가 배나 고가였고 차별화가 되어 있다. 피마자나 해바라기는 공지나 밭두렁가에 심었다. 피마자기름은 오래 전부터 머릿기름으로 썼다. 광복후 파마머리가 되면서 피마자기름은 머릿기름으로의 구실은 끝을 냈고 일제하 전쟁중에는 군용으로 공출되었었다. 어린 연한 피마자잎은 데쳐서 나물 또는 쌈감으로 즐겨 이용되었는데 특히나 정월 대보름의 팥밥에는 피마자잎 쌈이 필수품처럼 여겨졌었다. 유채는 1970년대부터 재배되어 증가 경향이었으나 1990년 이후 점차 감소하여 자취를 감추었다.
낙화생은 밭에서 조금씩 재배하는 농가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대규모 재배는 안되고 자가소비용으로 소규모 재배가 되고 있다.

약용작물인 인삼은 충청도의 특산물로만 여겨 왔는데 1980년경에 북이면 원덕리 박원갑이가 재배하기 시작하여 그후 면적이 면내에 확대되고 있다. 길경, 목단, 작약 등이 1970년대부터 소규모로 재배되었으나 연차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 또한 중국의 저렴한 한약재의 수입량이 매년 증가됨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아 재배 면적은 미미하다.

버섯재배에 있어서는 양송이,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등이 재배되고 있는데 장성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에 남면의 심동섭이 농촌지도소 근무중 자기집에서 재배한 것이 효시다. 1976년 이후의 생산상황을 보면은 다음의 [표 4-14]와 같지만 근래에 이르러서는 버섯류의 항암효과가 운위되면서 날로 재배면적이 늘어갔다. 장성에는 종균 생산업체(장성읍 성산리 반산종균배양소, 대표 최석풍과 북이면 백양사농협 종균센터, 소장 윤대령)가 있어 군내 공급은 물론 타도에까지 공급하고 있다.

장성에서 완초재배도 오래 전에 되고 있었다. 장성읍지(1927)에서 볼 수 있고 전라남도사정지(1931)에는 14,000여관을 생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후 장성에서는 습답에서 광복후에도 10여년간 재배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왕골은 돗자리 생산원료로 일반농가에서도 논의 한 귀에 심어 돗자리도 짜고 짚 대신 왕골로 망테기도 절고 신도 삼아 신었던 재료였다. 그리고 돗자리는 방이나 마루에 깔아 이용되었고 1960년대 무렵까지는 혼인 때 혼석(婚席)으로 신부의 필수 지참물이었다. 그러나 1970년이후 군내에서의 재배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기호작물인 담배재배는 [표 4-15]에서 보듯 1970년에 57.3정에 69M/T을 생산하였고 1985년에는 92ha에서 188M/T을 생산하는 규모로 확대되었으나, 매년 점감하여 2000년에는 72.7ha로 감소되었다.
담배는 전매품으로 생산전량을 공판했다. 그러므로 담배인삼공사(전매청)가 재배면적을 허가하고 경작지도와 건조 조제지도까지 실시하였다. 담배재배가 농가소득을 향상하는데 큰 몫을 하였기에 1960년대에서 1980년 후반에 이르기까지 농가는 경작허가를 얻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가족노동력이 부족한 농가는 1990년대에 이르면서 경작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1996년부터 격감되고 있다. 담배인삼공사에서도 외제담배의 개방으로 재배면적을 축소하여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양담배(외제담배)를 피우다가 취체되어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1995년 이후 담배가 암발병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 때문에 금연운동이 사회적으로 일고 있고 흡연장소가 지정되어 흡연가들을 괴롭히고 있다.

[표 4-12] 면화 재배면적과 생산량 (단위: 정, 근, 원)

면화 재배면적과 생산량 - 년도, 재배면적, 수확량, 단당수량, 판매량, 판매액을 나타낸 표
년도재배면적수확량단당수량판매량판매액
19261,328.5096,430.5075.4(45.24)282,91750,984
19281,301.401,166,95594.0(56.40)348,88459,235

자료: 全羅南道事情誌 908쪽. 주; ( )는 근을 kg로 환산한 것임.

[표 4-13] 주요 특용작물 및 약용작물 생산량 (단위: ha, M/T)

주요 특용작물 및 약용작물 생산량 -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1999을 나타낸 표
19651970197519801985199019951999
목 화면 적105131.278.22418.8
생산량104110.967.919310
대 마면 적36.627.52.3
생산량34.945.42.8
저 마면 적10.72.70.6
생산량5.22.90.7
참 깨면 적17.5102178.231218920157188
생산량8.944.687.3691391119176
들 깨면 적21.438.670.435 4481
생산량17.718.841.121 4152
낙화생면 적 1.2 120622216
생산량 1658136197
유 체면 적 14631028771.4
생산량 169134.2481392.2
피마자면 적1426.75.6
생산량12.981.9
인 삼면 적 1.731.34
생산량
길 경면 적 0.10.3
생산량 0.20.5
목 단면 적 2.41.5
생산량 2.43.7
작 약면 적 2.43.70.8
생산량 5.37.40.8
택 사면 적 0.3
생산량 0.4

자료 : 장성군사 (1982), 장성통계연보 1981, 1986, 1991 1996, 2000

[표 4-­14] 버섯류 생산 상황 (단위: 호, ㎡, M/T)

버섯류 생산 상황 - 1976, 1977, 1978, 1979, 1980, 1985, 1990, 1995, 1999을 나타낸 표
197619771978197919801985199019951999
재배농가12222---126
재배면적33,05833,05814,0007,0007,000- 2,772-31,666
총생산량33396.614,000-7,000-118-1,085

자료: 장성통계연보 1981. 농림과

[표 4-15] 엽연초 생산량 (단위: ha. 호. kg. M/T)

엽연초 생산량 - 1970, 1975, 1980, 1985, 1990, 1996, 2000을 나타낸 표
1970197519801985199019962000
경작농가344364365546510310238
경작면적57.350.452.29282.262.372.7
단 수120163194205220203257
총 생산량6980.8101.3188.4181.4126.6187.3

자료: 장성통계연보 1974, 1976, 1981, 1986, 1991, 담배인삼공사(1999, 2000)

4. 과실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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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이 장성에서 생산되었다는 기록은 장성읍지(1927)에서 볼 수 있는데 임산항목에 있다. 즉  (감), 梨(배), 棗(대추), 栗(밤), 銀杏(은행), 石榴(석류), 榧子(비자) 등이 松(솔), 竹(대), 梧(오동), 柳(버들) 등과 함께 취급되고 있다. 장성의 배과일에 대해서는 하서 김인후 선생이 인종(1543)으로부터 배 3개를 하사 받아 그 씨를 심었는데, 그 동안에 세 번 고사했으나 그 때 마다 새움이 돋아 자라 착과하였다는 기록이 하서전집에서 볼 수 있고, 그 배나무는 오늘에도 황룡면맥동 생가터에서 자라며 작은 배가 열리고 있다.

장성의 과수원예작물로 취급될 수 있는 품질이 좋은 과일 생산은 일제 때 시작되었는데 황룡면 내황의 고광준은 1935년경 일본의 과수농업을 보고 돌아와 뽕밭을 과수원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그 영향으로 내황마을은 오늘의 과수단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남면 분향리 심동섭은 1980년대에 과수묘목을 생산보급하고 '60년대 지도소 근무시절에는 전정기술 보급에 노력하였는 바 이 두 분은 장성 과수원예 발전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장성에서 면적의 확대는 광복후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1990년대에 이르면서 급증하고 있음을 [표 4­16]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성장과 국민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과실류의 소비량이 그 어떤 먹거리보다 매년 증가되고 있음에 기인하고 있다.

1965년에 장성의 과수 재배면적은 [표 4-16]에서 보듯 109.6ha에서 1970년 321.7ha로 3배로 확대되었고, 계속 증가하다가 1985년을 전후하여 한때 감소현상이 일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급증하여 1999년에는 1,088ha에 이르고 과실생산량도 1,088M/T에 이르고 있다. 재배면적의 증가를 과종별로 보면 사과가 1965년 7.3ha에서 1999년에는 181.5ha로 무려 25배로 증가하였고 생산량은 약 50배로 증가하였다. 장성의 사과는 기후 풍토와 재배기술의 향상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삼계면 상도리의 김재영은 후지사과농원에서 조숙 돌연변이종을 발견 육성하여 보급하였는데 2000년에 영예의 장성군 신지식인(新知識人)으로 선발되었다.

배 재배면적도 사과와 함께 장성에서 급진적으로 성장하였다. 1965년에 8.4ha가 1999년에는 192ha로 23배나 증가하였고 생산량도 59M/T에서 1,230M/T으로 21배로 대폭 증가하였다. 포도는 1965년에 재배면적이 4.6ha에서 1999년에는 72ha로 15배나 증가하였고 생산량도24M/T에서 48.7배로 증가하였다. 장성의 포도품종은 켐벨얼리에 집중되고 있는 편이며 '90년대에 들어 비가림 재배가 보급되고 있다.

감은 광복전 주로 떫은 감이 많았으나 그 후 단감묘목 생산보급이 이루어져 1965년에는 45ha에 566M/T을 생산하였는데 1999년에는 면적이 566ha에 6,266M/T을 생산하였다. 면적에 있어 12.5배 생산량에 있어서 약 10배의 증가를 보였다. 다른 과실에 비해 재배면적이 가장 많이 확대되었는데 감이 국민 구미에 맞고 생산비가 다른 과수보다 덜 든다는데 확대 이유를 들을 수 있다.

복숭아는 1970년에 158,4ha를 재배하여 622M/T을 생산하였는데 계속 면적이 줄어 1985년에는 10.7ha에 107.3M/T의 급감현상을 보이는데 이 무렵 모든 과수면적이 급감하고 있다. 1999년에는 47,8ha에 478M/T을 생산하고 있어 1970년에 비하면 1/3로 급감하였다.
그 원인을 들어보면 노목의 갱신과 묘목의 식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기술인력과 노동력의 부족, 포도와 같이 생산비의 상승과 가격의 완만한 상승, 농가의 자본부족 외국 과실의 수입등 복합적 요인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과실은 국민소득의 향상과 식생활의 패턴이 달라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실의 수요는 매년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UR협상 타결과 WTO의 체제의 출범으로 말미암아 세계시장은 국경없는 경쟁시대를 맞아 각종 과실을 황룡시장에서도 만나고 있다. 경영규모가 적고 기계화가 늦은 장성에서는 이러한 여건에 대응하여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가격과 품질로 이겨내지 않으면 안된다. 북하면 약수, 중평 등지에서는 옛날부터 고종시나 백종시를 깎아 곶감(乾枾)을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올렸는데 1970년경부터 쇠퇴했다. 농촌인력 부족으로 노임의 상승과 위험한 감따기작업 기피가 원인이었다.

[표 4-16] 주요 과실류 생산량 (단위: 면적;ha, 단수;ha, 생산량; M/T)

주요 과실류 생산량 - 1965, 1970, 1975, 1980, 1985, 1990, 1995, 1999을 나타낸 표
19651970197519801985199019951999
총수면 적109.6321.7483.2425.4218.9436.47641,088
단 수--------
생산량895.31,3772,922.109852,344.803,892.407,129.0011,449
사과면 적7.385.669.868.3114181181.5
단 수450592712641,7231,109940907
생산량3347.439.344.81,177.101,264.201,702.001,647
면 적8.414.457.460.645.244.471192
단 수7056817547051,1741,753861640
생산량5966.84334235317786131,230
포도면 적4.655.874.615.815.136.44372
단 수5326116873907071,1658931,625
생산량24264512.461106.9424.13841,170
면 적4545.220.1231.648.5129.8381566
단 수1,4008765864666145519531,107
생산량630376.81,712.20108.129868.75347.8
복숭아면 적44.3158.444.128.510.768.75347.8
단 수3376036181,8221,0038231,1811,000
생산량149.3622272.7269107.3565.9626478
매실면 적-1.50.4---355
단 수-850450---491620
생산량-8.51---17231

자료: 장성통계연보 1970, 1074, 1976, 1981, 1986, 1991. 1996. 2000.
주: 총수가 내용합계와 틀림은 소량생산의 과실(자두, 살구 등)량을 합산 된데 기인함.

5. 화훼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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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제가 향상됨에 따라 우리의 생활에서 꽃이 자리 잡으며 정서생활을 북돋아 주고 있다. 따라서 농가에서는 꽃농사를 1970년대 들어오면서 시설원예로 경영하게 되었다. 장성통계연보에 따르면 1976년의 꽃 재배농가가 7호에 시설(施設)면적이 11,900㎡, 생산량이 86,260본에 총생산액이 52,455,000원이었다.

7농가중 전업이 4호이며 3호는 부업으로 경영하였다. 그러나 1999년에 이르러서 화훼원예는 전업농가도 배로 증가하고 시설하우스도 '77년의 30배로 확대되어 생산액도 6.6배에 이르고 있다. '70년대 중반의 화종은 주로 절화류인 국화가 주종을 이루었고 백합 재배도 이루어졌다. 장성군농업기술센터(전 농촌지도소)에서는 백합 조직배양묘를 생산하여 1995년경 농가에 분양하여 바이러스의 피해를 대폭 경감시켰다. 2000년대에는 가온용 유류대의 상승으로 화훼재배가 조금은 저조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99년에 장성군은 장성읍장안 변갑연을 화훼분야의 신지식인으로 선정하였다.

[표 4-17] 화훼류 재배 상황 (단위: 농가: 호, 면적; ㎡, 생산량; 본수)

화훼류 재배 상황 - 년도, 재배농가(계, 전업, 부업), 시설면적(계, 포장, 하우스), 생산량, 총생산액을 나타낸 표
년도재배농가시설면적생산량총생산액(천원)
전업부업포장하우스
197674312,21611,900-86,26055
197774340,31339,2701,04385,91044,985
197874312,21611,90031678,25019,562
197974312,14011,80034065,0008,765
198074319,41519,07534040,9506,635
199988- 53,88923,14130,2482,110,000297,950

자료: 장성통계연보 1981. 농림과

6. 잠업과 잠견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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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 잠견생산에 대해 거슬러 장성읍지(1927)에서 보면 물산항 공산조에 紬(명주)로 표기되어 있음은 누에를 길러 명주실 즉 견사를 뽑아 명주베를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고, 전라남도사정지(1931)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잠업과 잠견생산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사정지에 따르면 장성에는 옛날부터 三眠 (면잠; 세잠누에)인 재래종이 분포되어 있어 산지에 있는 산상(山桑, 산뽕)과  (자)라는 산뽕 등으로 누에치기를 하며 아직까지 상전을 설치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였다. 1928년의 장성군의 잠업실적은 상전면적 305정 1단, 사육농가호수 춘잠(春蠶) 2,013호, 소립매수 잡교종인 백견 2,113매, 황견 1,081매, 순수종일본종 50매, 지나종 84매, 구주종 36매, 합계 3,364매, 수견량 1,902석, 하추잠(夏秋蠶)사육호수 2,013호, 소립매수 4,180매, 수견량 1,934석이었다. 이해 춘잠 수견량은 전남도내 제3위, 하추잠 수견량에 있어서는 제2위였고 누에고치 총 판매액은 쌀농사에 다음 가는 중요한 위치의 농가 소득원이었다. 이를 1926년도의 생산실적과 비교 해보면 [표 4-18]과 같다.

잠업이 장려되고 확대되던 1928년경 장성에서는 잠종제조업자가 3인이 있었는데 한국인이 두 제조장, 일본인이 경영하는 한 제조장이 운영되었다. 손석주는 기술자 손재호를 두고 춘잠용 2,800매 추잠용 1,800매를 생산하는 흥산원 잠종제조장을, 이희구는 기술자 고범진을 두고 춘잠용 3,400매 추잠용 3,800매를 생산하는 이희구 잠종제조장을 운영하여 생산된 잠종을 군내는 물론 도내 일원에 공급하였다.

장성에서 잠업은 광복후에도 정부시책에 따라 수출산업으로 적극 육성되어 발전했다. 1960년대에는 정부의 야산개발사업과 맞물려 상전면적 소잠량이 증가되었고, 1975년에는 [표 4-19]에서 보듯 1,132ha, 소잠량도 16,323매, 농가수도 8,509호로 대폭 증가하였다. 그런데 그 후 점감하여 1980년에는 소잠량과 산전면적이 1975년의 1/2로 각각 급감하더니 1990년대에 들어서는 잠업이 생사를 생산하는 잠업에서 5령 3일째의 누에를 분말로 만들어 고단백 건강식품(당뇨병 특효?) 생산형태의 잠업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잠업이 이렇게 변신한데는 저렴한 중국산 생사에 밀려 고가인 국산은 수출길이 막히고 국내 견직공장에서도 외국산 생사를 쓰게됨으로써 국산은 그 수요가 없어지자 급기야는 공판(共販)이 1997년에 중단되고 결국은 돌파구를 찾은 것이 건강식품이다. 이렇게 잠업은 쇠퇴하여 건강식품 생산을 위한 양잠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장성의 상전면적은 2000년에 겨우 26ha에 이르고 있다.

[표 4-18] 상전면적과 수견량 (단위: 면적; 정, 농가; 호, 소립;매, 수견;석, 판매;원)

상전면적과 수견량 - 년도, 상전면전, 사육농가수, 소잠매수(계, 춘잠, 하추잠), 수견량(계, 춘잠, 하추잠)을 나타낸 표
년도상전면적사육 농가수소잠매수수 견 량
춘잠하추잠춘잠하추잠
19261,801.801,7724,1772,6131,5642,1181,444674
1928305.12,0137,5443,3644,1803,8461,9021,934

자료: 전라남도사정지(1931) 909쪽
주: 수견량의 단위가 석(石)으로 되어 있음은 그 무렵 용량을 썼음.

[표 4-19] 상전면적과 잠견생산량

상전면적과 잠견생산량 - 년도, 상전면전, 잠업농가(계, 춘잠, 하추잠), 소잠량(계, 춘잠, 하추잠), 산견량(계, 춘잠, 하추잠), 공판량(계, 춘잠, 하추잠)을 나타낸 표
년도상전면적잠업농가(호)소 잠 량(매)산 견 량(M/T)공 판 량(M/T)
춘잠하추잠춘잠하추잠춘잠하추잠춘잠하추잠
19604583,8081,9041,9041,62176385822.813.129.6815.358.536.821
19655234,6492,5232,1262,6691,3531,31659.0229.7729.2538.8621.45 17.41
19711,2358,0434,0204,02312,5765,8166,760342,50163,38----
19751,1328,5094,4244,26716,3237,2249,099412.37216.7195.66403.83213.95189.87
19805522,8392,839-8,5704,4754,095309.53176.03133.49305.15171.65133.49

자료: 장성군사 (1982), 장성통계연보 1981

7. 수출농특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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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 농특산물 수출은 1974년 일본에서 마샬딸기묘가 도입되어 1985년에 삼동농산(주)에서 가공·수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94년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의 일환으로 과수·채소·화훼(국화) 등에 첨단자동시설이 보급되면서 고품질 다수확 농산물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1998년 방울토마토(일본), 1999년 단감·배·파프리카·돈육·농수산가공품 등이 미국·캐나다·홍콩·싱가폴 등지로 수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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